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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리미술관, 네즈미술관, 팀랩 보더리스 본문
다시 아침이 밝았다.
오늘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먼저 떠졌다. 어제의 정신 없음이 다행히 어느정도 진정이 되어 있었다. 가지고 있는 돈에서 현금을 나눠 가방에 넣고 나머지는 캐리어안에 모셔두었다. 오늘은 큰 돈이 필요하지 않는 날이다. 오늘의 대부분은 전시 관람이고 어제보다도 많이 걷게될 날이었다.
어제까지는 뉴발란스 990V6를 신었는데 뒷꿈치를 제대로 못잡아줘선지 쿠션이 너무 푹신해선지 생각보다 발이 많이 피곤했다. 비올때를 대비해 가지고 왔던 나이키 ACG 에어 모와브를 신고 나가기로 했다. 날씨는 맑았고 기온은 높았다. 오늘은 가장 얇게 입고 움직이기로 했다.
길거리로 나오니 어제 저녁부터 내린 비로 바닥과 가로수들이 젖어 있는게 보였다. 상쾌한 바람이 느껴졌다. 어제의 일은 있고 긍적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의 아침은 Bricolage bread & co. 에서 먹기로 했다. 오전에 관람할 모리 미술관에서 매우 가깝게 있고, 음식과 커피의 평도 아주 좋은 카페였다.
https://maps.app.goo.gl/eG3gkstkXeSKKtCo7
길을 잘못 들어 조금 돌아 왔지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인기답게 벌써 매장 앞에 대기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번호표를 입력해서 뽑는 방식이었는데, 한국어 버튼을 미쳐 찾지 못해 버벅거렸다. 알고보니 서버와 캐셔 모두 한국 분이셨다.
혼자일때 좋은점은 가끔 대기할 때 앞 일행들보다 빠르게 자리를 배정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실내/실외 어느자리나 상관없다고 했는데 서버가 바로 다가와 외부자리도 상관없냐고 물었다. 사실 외부가 더 좋았다. 이날의 공기는 참 좋았으니까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견딜만하기도 했다.
Bricolage bread & co. 는 L'Effervescence 헤드 셰프 시노부 나마에가 친구이자 오사카에서 빵집 르 쉬크레 쾨르Le Sucré-Coeur를 운영하는 이와나가 아유무, 커피를 로스팅하고 양조하는 푸글렌 도쿄의 켄지 코지마와 함께 의기투합하여 만들었다.
자리를 배정받고 주문을 하러 갔다. 따뜻한 라떼와 에그베네딕트를 시켰다. 서버가 내 의자가 젖어있다면서 타올을 가져다 줬다. 음식은 주문과 동시에 만들어지는지라 늦게 나왔다. 먼저 나온 커피를 아껴 마시면서 롯폰기 힐스 주변의 고요함을 즐겼다.
에그베네딕트는 훌륭했다. 아보카도의 기름짐과 햄의 새콤함이 입맛을 적당히 돋구어 줬다. 어제의 버브 커피는 당황하느라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했는데 이날의 커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아침 공기를 쐬며 아주 천천히 식사를 즐겼다.
모리 미술관은 식사한 카페 바로 옆에 입구로 들어가면 됐다. 식사를 천천히 했음에도 개장시간이 조금 남아 있어 대기를 했다. 10시에 티켓을 구입하고 엘레베이터로 바로 위로 올라갔다. 오늘의 전시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전시다. 예전 롯폰기 힐스 앞에도, 삼성 리움 미술관 앞에도 그녀의 거미 조각상 마망이 세워져있었다.
개장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 너무 좋았다. 여유있게 천천히 한작품 한작품 구경할 수 있었다.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면 작품 설명도 손쉽게 읽어볼 수 있어 편리했다.
사실 작품들이 난해하긴 했다. 그녀는 남성성을 혐오하면서도 모성애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페미니즘적이면서도 성적 묘사를 위트있게 비틀기도 했다. 전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현되었고 뒤로 갈수록 그녀의 생각의 변화나 심경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아침 일찍의 전시 관림이 꽤 좋다는 생각을 계속 했었다.
사진을 찍을 때 사람이 한명도 없다니, 누군가한테 떠밀리지 않는다니. 아침식사부터 아침 관람까지 모든게 완벽했다.
2003년작 Crouching Spider
루이즈 부르주아의 대표작격인 거미도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직원이 직접 작품의 뒤로 돌아가서 뒷편도 볼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2003년작 The Couple
가장 인상 깊었던 1993년작 Arch of Hysteria
통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마져도 하나의 작품 같았다. 아침 일찍 온 덕분에 이런 고요한 공간에 혼자 앉아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종종 들어오는 관람객들은 가운데 작품 보다 창 밖을 더 궁금해했다. 세계적인 작가의 관념을 담은 작품보다도 인간의 기술력으로 세운 고층 건물 위에서 자연이 선사하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더 인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1999년작 Topiary IV
방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던 1982-1989년작 Clouds and Carverns는 실제 그림자를 음영처럼 이용했다.
루이즈 부르주아가 저 향수를 정말 좋아했었나보다, 전시 마지막쯤엔 향수병과 함께 향이 흘러나오는 공간이 있었다.
모리 미술관을 나오니 조용하던 롯폰기 힐스가 제법 붐비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1시간 30분동안 전시 관람을 했다. 발걸음을 오모테산도 쪽으로 향했다. 큰길로 갈까 하다가 골목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좁은 골목 사이에 애니메이션속에서 익숙하게 보이던 일본 특유의 가정집들을 지나 꽤 긴 언덕길을 오르자 다음 목적지가 나온다. 네즈 미술관이다.
https://maps.app.goo.gl/7EWamtsdJjr6fgjG8
네즈 미술관 입구의 대나무 길은 관광객들에게 많은 인기를 구가한다. 내가 도착했을때에도 입구에서 사진을 찍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미술관 내부는 나의 예상과 달리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차있었다. 평일 점심인걸 생각하면 이렇게 붐비나? 할정도로 많은 일본인들이 전시 관람을 하러 와있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전시는 중요문화재 지정 특별 기념전으로 18세기 후반 일본의 약상자들을과 그 내용품을 주요 골자로 한다. 아쉽지만 미술관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이때부터 내가 신고있는 ACG에어 모와브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오른발이었다. 걸을때마다 삐걱 또는 띠딕 소리가 나는데, 아무래도 신발 안쪽 어딘가의 접착이 떨어진것 같았다. 조용한 미술관에서 발걸음이 너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전시실은 1층에 가마쿠라 초기 불상들을 모아놓은 작은 전시실 하나 더 있고, 2층에도 3개의 전시실이 더마련되어 있었는데, 각각 고대 중국 청동기, 차 도구, 그리고 중국과 일폰의 꽃새화들이 모여있었다. 크게 관심이 가거나 흥미로운 부분은 아니었지만 시간을 보내기엔 좋았다.
네즈미술관의 옆으로는 큰 정원이 마련되어 있는데 굉장히 잘 꾸며져있고, 안쪽으로는 다과를 즐길 수 있는 찻집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정원을 누비고 있었다.
정원 한켠에는 네즈 카페가 있었는데 꼭 들르고 싶은 곳이었지만 점심시간이 가까워서인지 줄이 매우 길어 방문을 포기했다.
오모테산도에 온김에 나의 인생 돈카츠 집, 마이센 돈카츠를 찾아가기로 했다. 사실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조금 꺼려졌지만 5년전의 그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 이번에도 꼭 방문해 같은 메뉴를 먹고 싶었던 곳이다. 오모테산도 안쪽 골목으로 꺽어 들어가자 예전에 이 길을 걸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조금 늦은 시간이어선지 손님이 꽉 찼던 입구 줄서는 곳에 생각보다 적은 대기인원이 보였다. 비어있는 입구를 보자 돈을 아껴야겠다는 생각마져 사라졌다. 빨리가서 줄을 서고 내가 생각하는 최고로 맛있는 그 돈카츠를 다시 한번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줄은 30분정도 섰다. 그 사이 직원이 다가와 메뉴판을 나눠줬다. 친절하게도 한글로도 설명되어 있었다. 그 사이 손님들은 다시 늘어 대기줄이 꽉 찼다. 나는 전에 먹었던 흑돼지 등심돈카츠를 선택했다. 제법 더운 점심이니 시원하게 하이볼도 하나 같이 주문 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을 때의 흥분과 기대감이 매우 높았다. 자리에는 기본 돈카츠 소스와 샐러드 소스가 세팅되어있었지만 내가 선택한 메뉴는 비싼 만큼 소스도 따로 나왔었다. 소스의 달콤 새콤한 그 맛, 분명 과일을 사용했을 그 맛이 여전히 기억났다.
샐러드를 땅콩 소스에 버무리고 장국을 한입 마신 후 특제 소스를 조금 뿌려 돈카츠를 한 조각을 한 입에 먹었다. 반가움이 느껴졌다.
살코기와 지방의 비율이 훌륭했다. 튀김도 완벽했다. 중간중간 하이볼로 입가심을 했다.
그때 그 맛,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던 그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뭐랄까, 이 맛을 변함없이 지켜줘서 고맙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구성으로도 충분히 배부르게 먹고 싶은데, 조금 더 과격하게 먹고 싶어 중간에 밥 한공기를 더 달라고해서 싹싹 비웠다. 더 없이 배부른 점심이었다. 행복했다.
잠시 소화를 시킬 겸 길 건너면에 MOMA디자인 스토어를 찾았다. 원래는 이 곳에서 몇가지 물품을 살 예정이었지만, 카드를 잃어버린 관계로 눈으로만 구경하기로 했다. 디자인 일변도의 제품만 있을 줄 알았는데 제법 실용적인 물건들도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쯤부터 다리가 아파왔다. 발이 붓는게 다시 느껴졌다. 신발안에서 발이 점점 옥죄어졌다. 중간에 텀이 되면 숙소에 들어가서 쉬었다 나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MOMA 스토어를 나와서 지하철을 탔다. 나는 리스본 파스테이스 드 벨렝에서 굉장히 맛있는 에그 타르트를 맛본적 있는데, 요요기 공원 근처에 포루투갈식 에그 타르트집이 있다해서 꼭 찾아가 먹고 싶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먹었던 에그 타르트는 전부 파이 시트 베이스여서 별로였는데, 이 곳은 파스테이스 드 벨렝처럼 페이스트리 베이스의 에그 타르프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https://maps.app.goo.gl/19cNatkKQYb3taSGA
요요기 공원 역에서 내려서 5분 정도 걷자 바로 나타 데 크리스티아노를 찾을 수 있었다. 아주 작은 집이었는데 이미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 또한 냉큼 뒤로가서 줄을 섰다. 협소한 공간 때문에 한 사람이 들어가서 주문하고 제품을 받아 나오면 그 다음 사람이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30분을 기다려서야 내 순서가 오게 되었다. 이날 에그 타르트와 치킨 파이를 구입해 먹어보고 싶었는데, 바로 앞에 있던 사람이 수십개의 파이와 타르트를 쓸어가면서 무려 5개 제품을 품절 시켰다. 결국 에그 타르트만 몇개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발이 많이 아파서 남은 시간동안은 호텔에 돌아가 쉬기로 했다. 타르트는 호텔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커피 한잔을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 돌아가는 길에 호텔 근처 롯폰기 블루보틀에 들렸다.
예전에 이곳에 방문할때도 느낀거지만 카페가 참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기본적으로 조용한 느낌이다. 내가 롯폰기를 한산하고 조용하다고 기억한곳도 이 카페 때문이었다. 테이크 아웃으로 라떼 한잔을 주문해서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창 밖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에그 타르트를 맛보았다. 맛있었다. 정말 맛있었다. 리스본에서 먹던 그 맛과 가장 흡사한 맛이었다. 오늘 하루는 맛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행복한 날이었다. 발은 아팠지만..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신발을 다시 뉴발란스 990V6로 갈아신었다. 이쯤되니 미드솔이 조금 더 단단하고 발 뒤꿈치를 잘 잡아주던 뉴발란스 2002를 가져오는게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신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예전만큼 잘 걷지 못하는걸까?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팀랩: 보더리스 관람을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미야초 역으로 향했다. 롯폰기역에서 한정거장 밖에 안되 좋았다. 가미야초 역 2번 출구로 나오니 눈 앞에 도쿄 타워가 커다랗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가 도쿄 타워를 사진으로 담느라 여념없었다.
https://maps.app.goo.gl/gygyxdx1aid6JWaJ7
팀랩: 보더리스는 아자부다이 힐스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조금 일직 도착했는데, 6시 예약 손님까지 입장 가능하다고 해서 입구로 향했다. 직원이 안에 들어간 사람이 많아 지금 당장 입장은 안되고 5시 45분에 다시 와달라고 했다. 이 근처를 구경하기로 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가미야초역 2번 출구가 아니라 5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지하로 연결된다는것을 알았다.
주변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마침 슈에이샤 만화 아트 헤리티지 도쿄 갤러리가 있어서 들어가보았다.
곧 100주년을 맞는 슈에이사의 상설 갤러리로, 원피스, 블리치등의 인기 만화 아트프린트를 전시 겸 판매하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어 다시 입구로 갔다. 무료 락커에 배낭도 집어 넣어두고 핸드폰만 손에 든채 가벼운 마음으로 입장했다. 입장 전에 설명 화면에서는 영어, 일본어, 한국어로 팀랩: 보더리스의 설명이 흘러나왔다. 관람 순서가 없는 전시, 곳곳에 숨겨진 관람 공간이 있는 전시, 한번 방문한 공간에 다시 방문하면 전시 내용이 바뀌는 전시라는 점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몇 년전 동대문 DDP에서 있었단 팀랩 전시를 기억한다. 비교하며 경험해보고 싶었다.
입구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내 신발끈이 환하게 빛났다. 신발끈을 하얗게 보이게 하는 형광염료가 파란빛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의 신발끈은 빛나지 않았다.
처음 공간은 동대문 DDP와 비슷했다. 벽면을 전부 채운 영상들, 나비들 약간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내부 공간은 헷갈렸다. 특별히 방향을 정하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 움직였다.
다음 공간도 동대문 DDP때 전시와 비슷했는데 차이점 하나는 전시 한쪽 벽면에 튀어나온 작은 언덕이었다. 영상을 통해 쏟아지는 물줄기가 언덕을 따라 흘러내리는 모습이 감성적으로 나를 자극했다. 아이들은 이 언덕을 뛰어오르고 미끄러지며 즐거움의 비명을 질렀다. 언덕의 가장 끝으로 올라가 앉았다. 육체의 피곤함도, 정신적 피곤함도 가짜 물줄기에 진짜처럼 씻겨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멍하니 앉아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 이 곳인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생각을 비워나가며 영상과 음악에 골몰히 몰두했다.
20분 정도 앉아있다가 다른 길로 떠났다. 숨겨진 공간이 있다고 했으니 옆에 새로운 입구가 나타날때마다 기웃거렸다. 분명 내 앞에 가던 사람이 어두운 공간속으로 쓱 사라지곤 했다. 어떤 입구로 들어갔더니 직원이 팻말을 들고 서있었다. 내부 LED전시물을 건드리지 말라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숨겨진 공간이었다. 팀랩은 이렇게 전시공간전에 관람객들이 주의해야할 사항을 꼭 인지시키고 입장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들어간 공간은 정말 장관이었다. 환상의 나라에 온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부터 성인까지 모두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미로 같은 공간을 돌다보면 컨트롤 패널을 찾을 수 있는데 이 전시공간에 펼쳐질 테마를 선택할 수 있었다.
계속 걷다보면 넓은 공터가 나온다. 천장과 벽, 바닥까지 유리로 마감되어 공간의 너비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모두가 손에 핸드폰을 들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여념 없다. 귀에 들려오는 음악도 신비로왔다. 제법 긴 시간을 이 안에서 즐겼다.
곧 이어서 또 다른 숨겨진 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동그란 구와 레일로 이루어진 조형물은 어두움과 빛 그리고 거울을 이용해 무한의 공간으로 확장된 느낌이었다. 이 전 공간이 고정된 전시물에서 LED를 이용한 빛의 변화에 집중했다면 이 곳은 움직이는 전시불과 LED, 복잡한 구조물을 감싼 거울로 한층 더 복잡한 느낌이었다.
모든 공간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겁고 신기한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운 공간에 들어설 때맏 여기서는 또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엿보였다. 팀랩의 전시는 어느순간부터 벽면의 영상과 소리뿐 아니라 이곳을 관람하는 사람들마져 하나의 조형물처럼 느껴지게 했다.
계속 돌아다니다보니 어느순간부터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왔던 곳을 또 오고, 어떤 곳은 내가 여길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영상과 음악 그리고 공간의 변주를 오감으로 느끼며 걸어다녔다.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아쉽게도 이날 한개의 전시는 유지보수 관계로 입장이 불가능했다. 다른 공간들을 보았을 때 그 공간도 분명 재밌는 곳이었을 것이다.
모든 공간을 다 찾아본 것 같다 느껴졌을 때, 처음 시작했던 공간으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 전시의 출구가 어디인지 모른다. 계속 정처없이 돌아다니다보니 전시는 다 본 것 같은데 어디로 나가야하는지를 도통 찾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계속 들어오고 계속 나가고 있는데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 수 없었다. 집중력을 발휘해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티 카페가 있다는걸 깨달았는데 너무 늦은시간이라 방문하지 않았다. 나중에 후기를 보니 낮에 방문했다면 티카페를 가보는것도 아주 좋은 선택이었을꺼란 생각이 들었다.
출구는 의외로 가장 처음 들어온 입구 근처에 있었다. 들어올때는 잘 안보이고 나가려고 하는 사람만 잘 보이는 공간에 있었다.
벌써 2시간이 지나있었다. 굉장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보고, 듣고, 체험하고, 그 안에서 신기한 것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다른 관람객들을 보는것마져 팀랩: 보더리스가 선사하는 전시같았다.
'To have seen something, is to not have seen something else'
'무언가를 보았다는 것은 다른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출구에 써있던 말이다. 나는 이 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했는가, 내가 놓친것들은 아쉬움으로 남아 다시 이 곳을 찾게 할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저녁을 먹을지 말지 고민했다. 사실 크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저녁이 아니면 먹기 어려운 일정이 있어서 숙소 근처 피자집을 찾았다. 도쿄 여행에 와서 일본에서 만든 와인을 한병 사서 매일 저녁마다 마셔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실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번정도는 내가 좋아하는 피자와 와인을 저녁 식사로 먹고 싶었다.
마르게리따 피자 한판과 화이트와인 한잔을 시켰다. 일행 없이 온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로 우걱우걱 피자를 먹고 입가심으로 와인을 마셨다. 피자는 살짝 짰지만 와인을 마시면 해결이 됐다. 와인의 맛은 적당히 좋았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 다 못먹을 줄 알았는데 어찌어찌 다 먹을 수 있었다. 오늘 먹은것들은 모두 다 마음에 들었다. 어제의 상처가 조금은 아무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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