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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국립신미술관, 21_21 디자인 사이트, 가장 맛있었던 커피 본문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조금 흐린 아침이었다.
이제야 조금 여행이 익숙해진 것 같은데 돌아가야 한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으론 어제 샀던 넘버 슈가 하나를 입에 털어 넣었다. 정신을 차릴 겸 호텔 근처 블루보틀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의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 했다.
내가 묶고 있는 렘 롯폰기 호텔의 체크아웃 시간은 12시로 꽤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엇그제 한 번 방문했던 에그 타르트 집을 다시 방문 했다가 체크 아웃하기로 했다. 정말 맛있었던지라 몇 개 더 사서 저녁에 공항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지난번 앞 사람의 싹 쓸이로 먹어보지 못했던 치킨 파이도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
두번째로 와본 요요기 공원 역은 낯섦이 조금은 사그라 들었는지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좁은 지하철 출구를 통해 나오니 단풍 가득한 길이라는걸 깨달았다.
타르트 집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래도 오전에 일찍 왔으니까 품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타르트 구입 후 오모테산도에 잠시 들렀다. 단톤 매장이 핫하다 해서 11시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제품은 없었다. 잠깐 둘러보고 나왔다. 사실 남은 돈도 거의 없었다.
호텔로 향했다. 방을 정리하고 짐을 빼서 내려왔다. 체크 아웃은 기계로 손쉽게 끝냈다. 호텔 한켠에 체크 아웃 손님을 위한 짐을 묶어 둘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서 매우 편했다. 캐리어를 두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롯폰기 근처에서만 머물 생각이다.
오늘의 점심은 호텔 맞은편 골목에 있는 닭가슴살 카츠로 유명한 집으로 향했다. 역시 한국인들로 보이는 줄이 있었다. 아니 이런 곳은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거지???
30분 정도 기다려서 입장 할 수 있었다. 닭가슴살 카츠에 굴 튀김 2개를 추가 했다.
닭가슴살 카츠는 소문대로 굉장히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함께 시킨 굴 튀김은 음~ 바다의 향이 확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 느끼해서 2개 이상 먹는건 힘들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생각 했다.
맥주를 한잔 시키지 않은게 아쉬웠다.
식사 후에 커피를 한잔 하고 싶었지만 롯폰기에서 다른 카페를 찾지 못해 포기했다. 국립신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1, 2층에 커피를 판매하기도 하고, 현대카드 가입자면 관람권이 무료인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지난번 도쿄 방문에서는 건물을 보러 간 것이라 유료였던 내부 전시를 관람하지 않았다.
이날은 내부에 사람이 꽤 많았다. 인포메이션 카운터에 가서 현대카드 어플 이야기를 했는데, 이날의 전시는 대부분 무료라 티켓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일부 유료 전시가 있지만, 현대카드 행사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락커에 짐을 넣어두고 천천히 자유롭게 구경을 했다.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건 제 49회 전국 전통 공예품 공모전과 제 5회 문화예술전으로 주로 주부님들?의 작품 출시 같았다. 꽃꽃이나 펠트 공예 자수공예 목공예등이었는데 우리나라도 70~90년대 집에서 어머님들이 자주 하던 기억이 있다. 이정도로 큰 규모의 전시회가 되어있는걸 보니 신기했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눈길을 사로잡은건 JAGDA 국제 학생 포스터 어워드 2024였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평화였는데 재치있게 표현한 평화의 메세지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2층에 아라카와 내쉬의 페인팅과 팝스타즈 전시는 별로였다.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흥미롭지도 않았다. 너무 실험적이라 생각되었다.
전시를 둘러보고 커피를 마실까 했는데 1층 카페의 커피가 상업용 네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한걸 보니 관심이 팍 식었다. 네스프레소가 싫은게 아니라, 이미 아는 맛의 커피를 마시기가 싫었다.
커피 없이 오랫만에 구로카와 기쇼의 유선형의 건축을 보며 앉아 있었다.
미술관을 나와 21_21 디자인 사이트로 향했다. 이 또한 5년전에 방문했던 곳이다.
현재 진행중인 전시는 "Pooploop'으로 말 그대로 표현하자면 똥의 고리? 똥의 순환이었다. 이게 또 무슨 소린가 하며 의문을 가지고 전시에 들어갔는데 자원의 소비와 순환 그리고 재활용에 대한 메세지를 비틀어서 전달하고 있었다.
새로운 전시에 맞게 내부 공간은 조금 변해 있었다. 벽체 틈에는 까마귀, 이끼와 같은 조형물이 끼어져있었고, 중앙 정원에는 재활용된 천을 이용한 그늘막과 그 아래에는 그늘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전시장에는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불규칙하게 신호음이 들렸는데 입장할때부터 꽤 신경쓰였다. 조용한 관람을 방해할 정도로 꽤 신경쓰이는 신호음이라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전시 마지막쯤에 있는 작품 설명을 읽었을 때 뒤통수를 한대 세게 맞는 느낌이었다. 전시장에 울려퍼지는 신호음은 미술관 내부에 있는 화장실에 사람이 들어갈 때마다 울리는 소리였다....
지금까지 빈번하게 날 괴롭히던 소리로 나는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을 방문하고 자원을 소모하는지 강렬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입구에 있는 쓰레기통에 다 쓴 입장권이 모여 있었는데 그양에 따라 소리의 톤이 변하는 기믹도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어두운 통로는 어떤 아저씨가 마음에 드셨는지 계속 사진을 찍고 계셔서 옆에서 10여분을 기다렸다.
한국 여자 관광객 두명이 전시보다는 자기들의 사진, 쇼츠를 찍는데 엄청 열심이었다. 정말 꼴보기 싫었다. 모두가 앉아 쉴 수 있는 의자에 앉아서 맞은편에 핸드폰을 세워두고선 맨 어깨를 들어내고 꿈지럭 거리는데 한 소리 해주고 싶었다.
21_21 사이트를 나오니 조금씩 어두워지려 하고 있었다. 원래 21_21사이트는 2개의 건물에서 전시를 하는데 맞은편 건물은 사용하지 않아 보였다. 오늘은 커피를 마시지 않아 마지막으로 꼭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맹렬하게 구글 지도를 검색했다. 조금 걸어야하지만 평이 아주 좋은 카페가 하나 있었다. 쌀쌀해진 바람을 맞으며 걸어갔다. 제발 맛있는 커피이길 바랬다.
미나토 구립 아카사카 초등학교를 지나갔다. 여기가 맞나? 싶을 때 눈앞에 아주 작은 카페가 등장했다. 안에는 4명정도가 앉을 수 있었다. 의자 마져 작았다.
플랫 화이트를 주문했다. 커피의 향이 훌륭했다. 맛도 훌륭했다. 하교길에 아이들을 데리러 온 어머니, 선생님들이 오가며 커피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뿐 아니라 드립커피도 판매하는 곳이었다. 누군가 주문한 드립커피 향이 작은 매장을 가득 채우며 내가 마시는 커피에 향을 더해줬다.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이번 여행에 가장 맛 있는 커피집을 찾았다.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걸어오는 귀찮음을 감수해서라도 매일 왔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조금씩 커피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밖도 어둑해지고 있었다. 이 도시를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호텔로 돌아와 묶어놓은 짐을 찾고 롯폰기 역으로 행했다. 다이몬 역으로 가서 게이큐 공항선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요코하마로 가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퇴근시간도 아닌데 지하철 안은 굉장한 인파로 가득했다. 구글 지도에서는 지금이 가장 혼잡한 시간이라고 알려주었다. 도쿄 메트로 패스는 제대로 써먹어보지도 못했다.
그러고보니 하네다 공항에서 도쿄로 들어갈 땐 스이카 카드를 찍고 갔는데, 롯폰기에서 하네다 공항을 갈 땐 도쿄 메트로 패스로 쭉 들어갔다. 공항선이 도쿄 메트로로 되는거였나? 의외네하며 개찰구를 통과하려 했는데 에러가 갔다. 그럼그렇지 도쿄 메트로 패스로 온 사람은 개찰구에서 추가금액을 더 내야 나갈 수 있었다.
하네다 공항에는 일찍 오길 잘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대한항공 부스의 줄은 매우 길었다. 셀프 백드랍도 되지 않아 영락 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40분 정도를 기다렸다. 짐을 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공항을 둘러보았다.
5년전 하네다 공항 3층에서 구경했던 그 거리는 그대로 있었지만 촬영 프로그램은 진행되지 않았다. 먹거리 공간도 그대로였다. 저녁 생각이 별로 없었다. 커피가 훌륭했으니까, 미련 없이 보안검사를 받으러 들어갔다. 오늘 공항에 모인 사람들을 봐서는 빨리 게이트까지 이동하는게 이득이었다.
발바닥이 많이 아팠다. 게이트 앞에 일찌감치 도착해 아침에 구입했던 에그 타르트와 치킨 파이를 먹었다. 남은 동전으로 음료를 하나 살까 했는데 먹고 싶은게 없었다. 넘버 슈가 하나도 마져 먹었다. 신발을 벗고 잠시 쉬었다. 잘못하면 잠들 것 같아서 정신을 꼭 붙잡고 있었다. 안내 방송이 울렸다. 비행기에 올라탔다.
기종이 다르겠지만 올 때 탔던 아시아나보다 돌아갈 때 탄 대한항공이 공간도 조금 더 넓고 모니터도 더 선명했다. 컨텐츠도 많았다.
베개도 있었다. 식사도 트레이에 나왔다. 맥주 한잔을 곁들이자 피곤함이 몰려왔다. 중간에 약한 난기류가 있었다. 포항을 지나면서는 꾸벅꾸벅 졸았다. 곧 김포 공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오고 활주로에 랜딩이 시작되었다. 창 밖으로 눈 더미가 쌓여있는게 보였다. 일본에 가있는 사이 기록적인 폭설과 추위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비치된 책자에서는 포루투갈 리스본 노선 취항을 홍보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다녀왔던 리스본 여행이 새록 새록 떠올랐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추위가 엄습했다. 배낭에서 얇은 겉옷을 꺼내 입었다. 이번에도 내 캐리어는 늦게 나왔다.
9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집 방향 출구의 올라가는 엘레베이터가 고장 수리중이었다.
다른 출구로 올라가 찬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적응이 안되는 추위였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보일러를 틀었다.
여행에서 내가 사온것은 밥풀이 붙지 않는 주걱 두개였다.
하나는 나의 것 하나는 어머니 것. 내일 이 밥주걱을 테스트 해봐야겠다.
짐 정리는 내일 하기로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즐겁고, 발 아프고, 맛있는 여행이었다.
내가 조금은 나이들었다는걸 느낀 여행이었다.
체력도 주의력도 조금은 떨어졌지만 여행을 즐기는 법은 살짝 성장한 것 같았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피로해진 일상의 기분 전환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나 또한 그러길 바랬는데 시작부터 꼬여버린 여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커피와 함께 멋진 마무리로 끝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주말이 지나고 나면 다시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그 사이에 급작스럽게 찾아온 추위에 적응하고 출근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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