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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오가와 커피, 은각사, 금각사, 잇포도차호 교토혼텐 본문
셋째날에는 교토 3대 커피에서 마에다 커피와 함께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는 '오가와 커피'를 찾아 왔습니다.
어제 방문한 이노다가 '전통과 품격'을 상징한다면, 오가와 커피는 '기술과 전문성'으로 정평이 난 브랜드로 오가와 커피 출신 바리스타들이 대회나 심사위원으로도 많이 활동했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에스프레소 기반 커피도 판매하고 있어서 '카페 오레'가 아닌 '카페 라떼'를 마실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방문했던곳은 가와라마치 플래그쉽 스토어로 미니멀한실내 디자인과 작은 중정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아침 메뉴도 매우 만족스럽고 인테리어도 고풍스러워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버스를 타고 은각사로 갑니다. 여러번 느끼지만 교토에 여행을 온다면 가와라마치쪽에 숙소를 잡는게 최고의 선택 같습니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매우 좋습니다.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타고 30여분을 가서 은각사에 도착했습니다.
교토의 은각사는 화려했던 권력의 정점에서 벗어나, 전쟁의 상흔 속에서 정신적인 고요함과 예술적 깊이를 추구했던 무로마치 시대 지식인들의 미학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는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현존하는 건물들은 1994년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아침이에서 그런가 사람이 많이 없습니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은각사가 바로 보입니다.
은각사(銀閣寺, 긴카쿠지)는 일본 실마치 막부(室町幕府) 후기의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찰입니다. 원래 공식 명칭은 자조사(慈照寺, 지쇼지)이지만, 교토의 북서쪽에 위치한 금각사(金閣寺)와 대비되는 ‘은각사’라는 별칭으로 전 세계에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은각사는 실마치 막부의 제8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인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지은 화려한 ‘금각사(긴카쿠지)’를 모델로 삼아, 1482년부터 자신의 은거 마당이자 별장인 ‘히가시야마 산장(東山山荘)’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교토는 약 10년간 이어진 참혹한 내전인 ‘오닌의 난(応仁の乱, 1467~1477)’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해 있었습니다. 정치적 무력감과 절망에 빠진 요시마사는 권력 다툼을 멀리하고, 자연 속에 묻혀 예술과 풍류를 즐기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히가시야마 문화(東山文化)이며, 은각사는 이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결정체입니다.

화려한 금박으로 뒤힌 금각사를 보고나면, 많은 사람들이 "왜 은각사에는 은박이 입혀져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역사적 가설이 존재합니다.


1. 재정 부족설: 오닌의 난 직후였기 때문에 막부의 재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은박을 입힐 여유가 없었다는 설입니다. 실제로 요시마사는 은각사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1490년에 사망했습니다.
2. 와비사비(侘寂) 미학 반영설: 최근 학계와 문화재 조사(X선 분석 등)에 따르면, 처음부터 은박을 입힌 흔적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화려함을 추구했던 금각사의 '기타야마 문화'와 달리, 히가시야마 문화는 단순함, 고요함, 그리고 덧없음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와비사비' 정신을 바탕으로 합니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칠하지 않은 나무 본연의 멋과 옻칠만으로 마감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1490년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사망한 후, 그의 유언에 따라 이 별장은 선종(임제종) 사찰로 개축되었고, 요시마사의 법명을 따서 지쇼지(慈照寺)라는 정식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센고쿠 시대(전국시대)를 거치며 수많은 화재와 전란으로 인해 당시 건립된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핵심 건물인 관음전(은각)과 동구당(東求堂)은 불타지 않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그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습니다.

은각사의 상징인 2층 구조의 누각은 관음전이라 불립니다. 1층은 일본 전통 주거 양식인 서원조(書院造) 스타일의 '정심각', 2층은 중국풍 선종 사찰 양식의 '조음각'으로 지어져, 무로마치 시대의 독특한 건축 융합을 보여주는 일본의 국보입니다.

왼쪽은 은각사의 본당, 오른쪽은 은각사의 동구당입니다. 동구당 또한 일본의 국보로서 요시마사의 개인 지불당(불상을 모신 건물)입니다. 동구당 일본 주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동구당 내부에 있는 ‘동인재(同仁斎)’라는 방은 일본 최초의 네 바닥 반(4.5조) 짜리 다실(茶室)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일본의 전통 다도(茶道)와 화실(진타토, 다다미방) 구조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은각사 정원에 조성된 독특한 모래 정원(고산스이)입니다. 달빛을 반사해 건물 내부를 밝히기 위해 조성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선종의 고요한 명상 세계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히가시야마 문화의 대표적인 조경 양식입니다.


아침의 은각사는 매우 고요합니다. 약간의 말소리와 물소리 그리고 바람소리정도만 들립니다. 이 곳의 단풍은 화려하진 않지만 빈틈을 켜켜히 잘 채우고 있습니다.








은각사의 뒷편으로 작은 언덕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마련 되어 있습니다.
꼭 이곳을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이 언덕에서 바라보는 은각사의 모습이야 말로 절경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 언덕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은각사 경내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옵니다. 여기서는 푸른 이끼 정원, 독특한 모래 탑(고게쓰다이)과 모래 정원(긴샤단), 그리고 국보인 은각(관음전)의 지붕이 한 폭의 그림처럼 내려다보입니다. 날씨가 좋으면 은각사 너머로 교토 시내 전경까지 시원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언덕은 단순히 사찰 뒤에 있는 산이 아니라 은각사 조경의 핵심 요소였습니다. 은각사를 지은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사찰 뒤편의 히가시야마(東山) 산자락과 그 안의 자연 언덕을 정원의 배경으로 삼는 '차경(경치를 빌려옴)'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인공적인 정원과 실제 자연의 언덕이 경계 없이 이어지도록 설계하여, 정원이 훨씬 깊고 아늑하게 느껴지도록 만든 것입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 주변은 짙은 녹색의 이끼가 카펫처럼 깔려 있고, 키가 큰 대나무와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습니다. 은각사 특유의 고요하고 차분한 '와비사비'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산책로이기도 합니다.
은각사를 방문하게 되신다면 정면에서만 관람하지 마시고 꼭 이 산책로를 걸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단풍이 살짝 끝나가는 시기였지만 나름 단풍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산책로를 다 돌아서 내려오면 은각사와 가장 가까운 위치로 돌아오게 됩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은각사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요한 은각사 관람을 끝마치고 바로 금각사로 향합니다.


금각사로 가는 버스 정류장은 은각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아직 단풍이 남아 있는 은행 나무 앞에서 많은 분들이 사진을 찍습니다.

은각사에서 버스로 40분정도를 교토 북서쪽으로 향하면 금각사에 도착하게 됩니다.

입구에서부터 느껴집니다. 이 곳은 은각사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클 것이라는걸..

금각사는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에 의해 1397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은각사를 지은 요시마사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요시미츠는 남북조로 갈라져 있던 일본을 통일하고 막부의 권력을 정점에 올려놓은 인물입니다.

그는 쇼군 직에서 물러난 후, 자신의 막강한 권력과 부를 과시하고 은거할 목적으로 명문 귀족의 별장을 가로채 ‘기타야마 산장(北山山荘)’을 지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각사의 시초입니다. 당시 요시미츠는 중국 명나라와의 무역(감합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를 바탕으로 화려하고 이국적인 기타야마 문화(北山文化)를 꽃피웠습니다.

금각사의 상징인 3층 누각 '금각'은 단순히 화려하게 꾸민 건물이 아니라, 당시 요시미츠가 쥐고 있던 정치적 권력 구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건축물입니다. 각 층이 완전히 다른 세 가지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 1층 (법수원): 일본 평안 시대(헤이안 시대) 귀족들의 주거 양식인 신덴조(寝殿造) 스타일입니다. (귀족 문화의 흡수를 상징)
- 2층 (조음동): 무사들의 주거 및 교양 양식인 부케조(武家造) 스타일입니다. 외벽에 금박을 입혔습니다. (귀족 위에 군림하는 무사 계급의 권력을 상징)
- 3층 (구경정): 중국풍 선종 사찰 양식인 전종양(禅宗様) 스타일입니다. 안팎을 모두 순금으로 도배했습니다. (종교적 최고 권위와 명나라 무역을 통한 부를 상징)



맨 꼭대기 지붕에는 권력자를 상징하는 금빛 봉황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귀족, 무사, 불교 양식을 아래에서 위로 쌓아 올린 구조는 요시미츠 자신이 이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 있음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정치적 메시지였습니다.

1408년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사망한 후, 그의 유언에 따라 이 화려한 별장은 선종(임제종) 사찰로 개축되었습니다. 사찰의 이름인 록원사(로쿠온지)는 요시미츠의 법명인 '록원전전태정대신'에서 따온 것입니다
은각사와 마찬가지로 금각사 역시 일본의 수많은 전란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은각사를 짓게 된 계기였던 오닌의 난(1467~1477) 당시에 금각사 경내의 대부분 건물들이 불타 없어지는 처참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핵심 건물인 '금각(누각)'만큼은 전화를 면하고 수백 년 동안 살아남았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쭉 겉다보면 갑자기 덩그러니 세워져 있느나 집 한채가 보입니다.
석가정(夕佳亭)이라는 이름은 ‘저녁(夕) 노을이 질 때 이곳에서 바라보는 금각의 풍경이 유난히 아름답다(佳)’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실제로 이 집은 금각사 경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홀로 서 있어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아주 일품입니다.
이 집은 금각사가 처음 지어진 14세기 무로마치 시대가 아니라, 후대인 17세기 에도 시대에 추가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당시 최고 권력자인 쇼군(장군)이 금각사에 행차했을 때, 장군에게 차를 대접하고 극진히 모시기 위해 당대 최고의 다도 거장이었던 '가나모리 소와(金森宗和)'가 특별히 설계하여 지었습니다.

석가정에서 바라보는 금각사의 모습

금각사를 보고 나와서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근처에 있는 장어 덮밥 집을 찾았습니다.
유튜브에서 보고 저장해놓았던 곳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던건지 40분 정도 음식을 기다렸어야 했는데, 장어 덮밥의 맛만큼은 기다림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맛있었습니다.
원래 생선머리를 먹지 않는데, 머리까지 먹었으면 말 다한거죠.. (물론 머리는 별로였습니다.)

금각사에서 나와 다시 교토 중앙부로 돌아옵니다.

선물용으로도 좋은 각종 인센스를 파는 가게를 잠시 구경해봅니다.



다양한 향을 체험해볼 수 있는 박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챠폰도 있더군요. 향 주머니여서 여기저기 달기에도 좋아보였습니다.



후식으로는 육식맨님 유튜브 영상에도 나왔던 잇포도차호 교토혼텐을 찾았습니다.
교토에 왔다면 제대로 된 말차 한번 정도는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교토 가미교구(교토 고쇼 근처)에 위치한 본점 건물은 고풍스러운 일본 전통 목조 가옥 외관에 커다란 천막(노렌)이 드리워져 있어, 입구에서부터 압도적인 세월의 포스가 느껴집니다. 내부로 들어가면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차 통들이 진열되어 있고, 차 향기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잇포도는 무려 조선 시대 영조 시절인 1717년에 창업하여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교토에서 자리를 지켜온 노포입니다. 원래는 근처 고쇼(궁궐)에 차를 납품하던 곳이었는데, "차의 품질을 한결같이 유지하라"는 의미로 '하나를 지킨다'는 뜻의 '일보당(잇포도)'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잇포도 본점은 1864년, 교토 중심가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금문의 변(蛤御門の変)’의 여파로 불타 없어져 버렸고 1865년 지금 자리에 다시 지어 현재 약 160년정도 된 등록유형문화재입니다.

잇포도차호 교토혼텐(一保堂茶舖 京都本店)은 교토를 넘어 일본을 대표하는 가장 역사 깊고 권위 있는 전통 찻집(차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그런만큼 차의 가격도 상당히 비쌉니다.
제가 선택한건 코이차(濃茶, 농차)입니다. 옛 쇼군(장군)들이 손님을 극진히 대접할 때 내놓던 차의 주인공이 바로 이 코이차입니다.

찻가루를 그렇게 많이 넣으면 엄청나게 쓰고 떫을 것 같지만, 최고급 말차로 만든 코이차는 입에 넣었을 때 쓴맛보다는 단맛과 깊은 감칠맛(우마미), 그리고 아주 진한 풍미가 입안에 부드럽게 퍼집니다. 쓴맛이 나지 않는 어린 잎이자 대차(오오차) 등급의 최고급 찻잎으로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가장 귀하고 사치스러운 차였습니다.
제가 맛본 코이차는 굉장히 걸축하고 약간의 짠맛과 해조류같은 감칠맛 그리고 쓴맛도 느껴졌습니다. 한번에 벌컥 마시기에는 무리가 있었는데, 두번은 몰라도 한번은 경험해볼만한 맛이었습니다.

화과자는 여러 디자인이 준비되어 있었고 직원이 주문을 받을 때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코이차를 나누어 마시며 입을 가실 수 있는 화과자를 먹고, 마지막에 가볍고 부드러운 우스차(박차)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 정식 다도의 흐름입니다. 때문에 이곳에서도 어느정도 차를 마신 다음에는 뜨거운물을 내주었습니다.


차센으로 저어본 후 우스차를 만들어 먹어봅니다. 조금 더 맛이 깔끔해지는 것 같습니다.

오전부터 제법 걸었기 때문에 말차를 마시면서 조금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장입구에서는 여러가지 차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선물용이나 직접 마실용도로 사가는 분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매장에서 차를 마실분들은 이 곳 뒷편으로 쭉 들어가시면 됩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에 문구점이 있다 해서 들러보았습니다.


볼펜, 샤프등을 파는곳인가 했는데 그것보다는 조금 더 전통적인 느낌이었습니다. 붓, 벼루, 먹, 그리고 다양한 종이들과 편지지, 엽서를 판매하는 곳이었습니다. 12월이어선지 2026년과 관련된 엽서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근처에 중고책방도 있더군요.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유튜브에서 봤던 예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왔습니다.


가격은 비쌌는데 비주얼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미리 만들어진 색색의 아이스크림 꽃봉오리와 당고, 말차앙금등을 올려서 주셨습니다.

겨울이 다가온다고 벌써 트리도 등장했네요.


가와라마치 근처 이곳저곳 상점들을 구경했습니다.

굉장히 멋진 접시였는데, 가격을 보고 와우..그때 깨달았습니다. 이 곳은 상점이 아니라 갤러리였다는것을요. 이 곳은 일본 전역에서 활동하는 내로라하는 현대 신진 공예 작가들과 장인들의 100% 수공예 작품들만 엄선해서 독점적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2층으로 올라가볼 수 있습니다.

어두운 조명아래 덩그러니 방이 하나 존재합니다. 이 건물은 원래 에도 시대나 메이지 시대부터 내려온 교토의 전통 상가 주택인 ‘교마치야(京町家)’를 개조한 것입니다.

나무 계단을 밟고 2층 전시실로 올라가면 오래된 목조 대들보와 기둥, 그리고 특유의 아늑한 다다미방 구조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현대적인 감각의 비싼 그릇들이 수백 년 된 고택의 나무 질감, 그리고 격자창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채광과 어우러져 마치 미술관 전시를 보는 듯한 묘한 감동을 주는 곳입니다. 낮에 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저녁 먹어야하는데 잠시 단게 땡겨서 군것질을 합니다.

가와라마치를 지


오늘의 저녁은 가볍게 청어 소바를 먹기로 했습니다.

이곳의 주 메뉴는 니신소바(にしんそば, 청어소바)입니다. 국수 대접 밑에 달콤 짭조름하게 졸인 청어 한 마리가 통째로 숨어있는, 교토의 대표 향토 음식인데요. 이 니신소바를 1882년 세계 최초로 개발하여 퍼뜨린 곳이 바로 이 '마츠바'입니다.
옛날 교토는 분지 지형이라 신선한 바다 생선을 먹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바닷가인 홋카이도 등지에서 청어를 말려서 교토로 가져왔는데, 마츠바의 2대 점주였던 '이치타로'가 이 말린 청어를 영양가 있고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연구한 끝에 따뜻한 메밀국수 고명으로 얹어 내놓은 것이 대히트를 치게 되었습니다.
마츠바는 1861년에 창업하여 지금까지 5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먼저 시원한 생맥주를 한잔 시키고

냉 청어소바를 시켰습니다. 비린내 하나도 없고 청어는 쫄깃합니다.
게눈 감추듯 해치웠습니다.


맥주를 주문하면 술안주로 먹으라고 이 청어 가루?같은걸 주는데 달콤 짭짤하니 매우 잘 어울립니다
가게 한편에는 예전 가게의 모습도 미니어쳐로 구성되어 있네요.

입구쪽에서는 손질된 청어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가모강을 바라보면서 이제 숙소로 향합니다.
오늘은 많은곳을 다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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