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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차, 스마트 커피, 텐류지, 아라시야마 유사테이, 아라시야마 온센 카덴쇼 본문


교토 4일차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의 아침은 교토 3대 커피 중 하나인 스마트 커피입니다.
스마트 커피는 1932년에 창업했습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이름은 ‘스마트 보이(Smart Boy)’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스마트(Smart)’는 영리하다는 뜻보다는 당시 표현으로 ‘세련되고 깔끔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창업주가 서양식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손님을 맞이하며 교토에 선진적인 다방 문화를 전파했고, 전후인 1948년에 지금의 ‘스마트 커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날까지 9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스마트커피는 입구에 있는 독일제 프로밧 로스터를 사용해 매일 원두를 볶아내고 있습니다.




소금통에 습기차지 말라고 원두를 넣어두는 센스.. 오늘의 메뉴는 카페오레와 에그 산도 그리고 스마트커피의 시그니처인 프렌치 토스트입니다.



식사를 끝마치고 나오니 대기 줄이 엄청 깁니다. 스마트커피는 좌석수가 적다보니 아침에 오픈런을 하지 않으면 대기 시간이 크게 늘어나는편입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체크아웃을 합니다. 오늘은 교토의 서쪽, 아라시야마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가와라마치역에서 한큐 교토선을 타고 가쓰라역까지 가서 다시 한큐 아라시야마선을 타면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한큐 아라시야마선 역에서 나오자마자 마주보고 있는 오늘의 숙소는 아라시야마 온센 카덴쇼입니다.

체크인은 오후3시부터라 짐을 맡겨두고 일단 아라시야마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동네가 조용해서, 단풍이 끝나서 사람이 없는걸까? 했는

도게츠교 앞에 도착하니 엄청난..진짜 그야말로 엄청난 인파가 저 멀리 꽉 차있는게 보입니다.

날씨는 선선하고 좋았네요. 교토 아라시야마의 상징이자, 수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의 배경이 된 도게츠교(渡月橋, 도게츠큐)는 한자를 그대로 풀면 ‘달을 건너는 다리’라는 뜻입니다. 이 낭만적인 이름은 가마쿠라 시대(13세기 말)의 천황이었던 카메야마 천황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어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가을 밤, 천황이 이곳 오이강(대천)에 배를 띄우고 선상 잔치를 즐기던 중이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하얗고 둥근 보름달이 떠올라 하늘을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그 달이 마치 이 다리 위를 유유히 걸어서 건너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그 광경에 깊이 감동한 천황이 *"달이 다리를 건너는 것 같구나"*라고 읊조린 데서 지금의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도게츠교는 원래 836년(헤이안 시대 초기)에 '도쇼'라는 승려가 불교 도량을 세우면서 처음 놓은 다리였습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약간 더 위쪽에 위치해 있었고 이름도 달랐습니다.
이 다리가 지금의 위치로 오고 아라시야마의 중심이 된 계기는 바로 천룡사의 건립(1339년)이었습니다. 그래서 도게츠교와 천룡사는 같이 보았을 때 이해가 쉽습니다.
천룡사는 현재 무료로는 외부 정원만 거닐 수 있고, 유료로는 본당 안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본당 안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천룡사는 1339년, 무로마치 막부를 세운 제1대 쇼군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건립했습니다. 이 사찰을 지은 목적은 매우 정치적이고도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은 막부를 세우려는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천황 중심의 통치로 돌아가려는 '고다이고 천황' 사이에 치열한 권력 투쟁(남북조 시대의 서막)이 벌어졌습니다. 이 싸움에서 패배한 고다이고 천황은 결국 억울함과 슬픔 속에서 서쪽 오지(요시노)로 쫓겨나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록 적이었지만 한때 모셨던 천황이 서거하자, 쇼군 다카우지는 천황의 원혼이 저주를 내려 막부를 파멸시킬까 봐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이에 당대 최고의 고승이었던 무소 소세키(夢窓疎石) 스님의 조언을 받아, 고다이고 천황의 넋을 달래고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천황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라시야마 별장 터에 거대한 사찰을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천룡사입니다.

전쟁 직후였기 때문에 막부에는 사찰을 지을 재정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때 무소 소세키 스님의 제안으로 막부는 중국 원나라에 공식 무역선인 ‘텐류지부네(천룡사선)’를 파견했습니다.
이 무역을 통해 막대한 상업적 이익을 거두었고, 그 돈으로 천룡사를 화려하게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즉, 천룡사는 대중국 무역을 통해 축적된 부와 문화 교류가 만들어낸 결실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찰의 중심 진입로이자 목재 수송의 요충지로 도게츠교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 천룡사와 운명을 함께하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천룡사 역시 역사 속에서 무려 8번이나 대화재를 겪으며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고, 현재 우리가 보는 본당 건물들은 대부분 메이지 시대(19~20세기 초)에 재건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찰 뒤편에 있는 ‘조원지 정원’만큼은 14세기 창건 당시의 모습 그대로 기적적으로 보존되어 일본 최초의 국가 사적 및 특별 명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정원은 금각사·은각사 정원의 모태가 된 정원으로, 앞서 언급한 무소 소세키 스님이 직접 설계한 명작입니다.
때문에 약간의 금액을 내고 본당으로 올라오면 조원지 정원을 조금 더 편안한 각도로 즐길 수 있습니다.





천룡사 곳곳에는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아라시야마의 상징, 대나무 숲길(치쿠린)은 천룡사의 북쪽 문(북문)과 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 대나무 숲 전체가 천룡사의 방대한 경내 영역 중 일부였습니다.
때문에 경내를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북문을 통해 치쿠린으로 갈 수 있습니다.






북문으로 나오자마자 펼쳐진 대나무숲.. 그리고 엄청난 인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교토가 일본의 수도였던 헤이안 시대(794~1185년)부터 아라시야마와 사가노 지역은 왕실과 귀족들이 도심의 소음을 피해 쉬러 오는 최고급 별장지였습니다.
당시 귀족들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이곳에 별장(산장)을 짓고 정원을 꾸미면서 대나무를 의도적으로 많이 심었습니다. 대나무는 사계절 내내 푸르러 지조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바람이 불 때 서각거리는 소리가 귀족들에게 풍류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수백 년 동안 귀족들의 사유지에서 가꾸어지던 대나무들이 시간이 흐르며 거대한 군락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의 전통 신앙과 불교에서 대나무는 '귀신이나 악한 기운을 물리치는(벽사, 辟邪)' 영험한 식물로 여겨집니다.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어 신성한 기운이 통과하고,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나가며, 번식력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천룡사 같은 거대 사찰과 신사 주변에 결계를 치듯 대나무를 촘촘히 심어 성스러운 영역을 보호하고자 했고, 이것이 오늘날 사찰 뒷문과 연결된 거대한 숲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일본 정부(환경성)는 아라시야마 대나무 숲을 ‘일본의 남기고 싶은 소리 풍경 100선’ 중 하나로 지정했으니 대나무 숲을 걸으며 소리도 집중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라시야마의 치쿠린은 여기저기 나뉘어 있는데 천룡사 북문과 연결되는 이 곳이 가장 유명하고 가장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선지 정말 인파가 많았습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인파에 밀려 걷게 됩니다.
생각보다 길이 짧았기에 의외로 잠깐 걷고 사진을 찍고 나면 크게 볼거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라시야마에서 1박을 하는지라 내일 아침 사람이 더 없을 때 다시 와보기로 했습니다.
우선은 배가 고프니 점심을 먹어야겠습니다.


오늘의 점심은, 내일 아침으로 점찍어둔 빵과 에스프레소와 아라시야마 정원 "에스프레소와"에서 함께 운영하는 '와레와레와 아라시야마'입니다.

가라아게 정식을 시켰는데 분홍색 소스가 상당히 맛있었고 닭도 큼직해서 좋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영수증을 화투패 모양으로 주었습니다.


아라시야마의 가장 핫플인 %아라비카 아라시야마점을 지나갑니다. 줄 선 인파들을 보면 먹을 엄두가 안납니다. 좁은 매장안에서 직원들이 그야말로 미친듯이 커피를 내리고 있습니다.

가츠라 강을 바라보면서 잠시 산책을 합니다.
가츠라 강은 재미있게도 어느 구간을 흐르느냐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세 개나 됩니다. 전체를 통틀어 부르는 공식 명칭은 가츠라 강이지만, 현지인들과 역사 속에서는 이렇게 나뉩니다.
- 상류 (오이 강, 大堰川): 아라시야마의 상류이자 가메오카시에 가까운 위쪽 구간을 흐를 때는 ‘오이 강(오이가와)’이라고 부릅니다.
- 중류 (호즈 강, 保津川): 계곡을 따라 거칠게 내려오는 협곡 구간은 ‘호즈 강(호즈가와)’이라고 부릅니다. (교토의 명물 액티비티인 '호즈강 뱃놀이'와 '토로코 열차'가 바로 이 구간을 따라 달립니다.)
- 하류 (가츠라 강, 桂川): 도게츠교를 기점으로 강 폭이 넓어지며 교토 시내 남쪽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하류 구간부터 본격적으로 ‘가츠라 강’이라고 부릅니다. 카메야마 천황이 "달이 다리를 건넌다"고 읊조리며 뱃놀이를 했던 역사 속 그 강이 바로 도게츠교 앞 강가입니다.

관광을 위한것인지 배들이 정박해있었지만 이날의 날씨는 바람이 불면 제법 쌀쌀했습니다. 아무도 강가 근처에 서있지 않았습니다.
도게츠교에서 가츠라 강을 오른편에 두고 상류 쪽으로 10분 정도 조용하고 한적한 강변길을 걷다 보면 막다른 길 끝에 숨겨진 듯 나타나는 고택이 하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교토에서 가장 뜨겁게 떠오른 절경 명소, 바로 ‘아라시야마 유사이테이(嵐山 祐斎亭)’입니다. 사실 이번 여행은 이곳에 들르기 위해서라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가장 기대했던 곳입니다. 입장인원이 제한되기 때문에 예약이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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